나는 본래 내성적이고 조용한 편이라서 사람들과 쉽게 사귀지 못한다. 나는 혼자 조용히 놓아두면 제일 편하고 행복하다. 이런 나에게 사람을 대상으
로 하는 목회가 그다지 적성에 맞을 수가 없다. 더구나 적극적으로 낮선 사람을 만나야 하고 없는 길도 만들어야하고 막힌 상황에 맞서야 하는 선교사의길은 내 성격에 맞는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종놈이 성격과 적성에 맞추어 일할 수 있겠는가? 종은 자기의 주장이나 개성이나 적성보다 주인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다.
주님의 종으로 18년 선교현장에서 지내다보니 내게 없던 성격과 적성이 개발되고 그것이 이제는 은사와 성품이 되어 버렸다. 지금은 사람 만나는 것도 좋아하고 새로운 미지의 세계에 도전하는 일도 제법 잘 하고 있다.
더 놀라운 것은 내가 어느새 사람, 지역, 기관, 선교지, 교회 등을 연결하는 일을 사명처럼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정말 내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인데 지금은 그 일이 내게 가장 자연스럽고 잘 할 수 있는 일이 된 것이다. 그래서 요즘 누가 내게 “당신은 무슨 일을 하는 선교사요?”라고 물으면 “나는 선교 네트워커입니다.”라고 대답한다. 작가가 어느 단계가 되면 자기만의 색깔과 작품 세계가 나오듯이 나에게도 이제 나만의 선교세계와 색채가 나오고 있다고 생각한다.
지난 18년 동안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프랑스를 다녀갔다. 동기들, 선후배들, 심지어 선배가 아는 후배가 목회하는 교회의 학생들, 다양하게 이리저리
얽힌 지인들까지 찾아와 지내고 갔다. 나는 그때마다 가이드, 민박집 주인, 픽업, 호텔 및 민박집 알선자, 목사, 선교사, 아저씨, 깊은 밤에 급하게 출동해서 지갑 털린 여행자를 도와야 하는 긴급구조요원으로 변신한다. 딱히 도와주는 사람도 없으니 혼자서 북치고 장고치고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살았다. 그렇다고 무슨 댓가를 받고 이런 일을 한 것은 아니다.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가?” 하는 생각도 자주 했다. 그러면서도 잘해야 본전이었다. 나는 항상 해야 하는 일이지만 본인들은 평생에 한번 올까말까한 일이니 내가 한번만 소홀히 하면 서운하게 생각하고 다시 볼일이 없게 되기도 한다. 풍성하게 대접하면 “역시 좋은 곳에서 잘 살고 있구먼!”, 대접이 소홀하면 “좋은 곳에 살면서 궁상떠네!”라고 하는 것 같은 생각에 늘 조심스럽다. 제 3세계에가서는 선교비라며 챙겨주고 간다는데 여기는 그런 분들이 극히 드물다. 혹시 그런 일이 있어도 내 쪽에서 받아들이기도 어색하다. 그래도 기왕 하는 것 잘하자는 생각으로 최선을 다해서 섬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