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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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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성원용님께서 작성하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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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5 align="justify" style="text-align: justify"> <div title="Page 1" class="page"> <div class="layoutArea"> <div class="column"> <p><span style="font-family: TSThgrgl; font-size: 12pt; font-weight: normal"></span></p> <div align="center"><img width="213" id="ANYBOARDVIEWIMAGE_376472" style="border: currentColor; border-image: none" src="/user/saveDir/board/www35/1307_1446817999_0.jpg" orgheight="162" orgwidth="213" alt="" /></div> <p style="text-align: left"> </p> <div align="center"><img width="220" id="ANYBOARDVIEWIMAGE_705145" style="border: currentColor; border-image: none" src="/user/saveDir/board/www35/1307_1446818000_1.jpg" orgheight="165" orgwidth="220" alt="" /></div> <p style="text-align: left"> </p> 프랑스의 16세기는 종교개혁의 시대는 4명의 앙리(Henri)의 시대였다. <p></p> <p><span style="font-family: TSThgrgl; font-size: 12pt; font-weight: normal"><br /></span></p> <p><span style="font-family: TSThgrgl; font-size: 12pt; font-weight: normal"> 첫째, 앙리 2세가 있다. 그는 이태리 메디치가의 까트린느와 결혼을 하였고, 그 왕비 대신에 궁정 주방장의 미앙인 디안느 드 쁘아띠라는 연상의 여인을 사랑하여 르와르 강변의 아름다운 성 쉬농소를 그녀에게 준 열애의 왕이었다. 앙리 2세는 위그노들을 박해하다가 그 박해가 극에 달했을 때 궁정의 마상시합에서 몽고메리장군의 창에 찔려 사망했다. </span></p> <p><span style="font-family: TSThgrgl; font-size: 12pt; font-weight: normal"><br /></span></p> <p><span style="font-family: TSThgrgl; font-size: 12pt; font-weight: normal"> 셋째, 앙리 3세이다. 이 사람은 자신을 대적한 가톨릭 연맹의 수장인 앙리 드 기즈 형제를 르와르 강변에 있는 성체로 불러들여 암살한다. 이 일로 전국은 앙리 3세를 규탄하는 촛불시위로 들끓었고, 앙리 3세를 암살하라는 가톨릭 설교자들의 극단적 선동에 자극을 받은 도미니크 수도사가 파리로 입성하는 왕의 마차에 뛰어 들어 찌른 비수에 앙리 3세도 죽고 말았다. </span></p> <p><span style="font-family: TSThgrgl; font-size: 12pt; font-weight: normal"><br /></span></p> <p><span style="font-family: TSThgrgl; font-size: 12pt; font-weight: normal"> 둘째, 앙리 드 기즈이다. 이 사람은 당시 가톨릭 연맹의 수장으로서 위그노들의 박해를 주도했으며, 앙리 3세를 파리에 들어오지 못하게 막았다가 결국에는 그의 칼에 의해서 죽임을 당하게 된다. </span></p> <p><span style="font-family: TSThgrgl; font-size: 12pt; font-weight: normal">넷째, 앙리 4세이다. 이 사람은 까트린느 드 메디치의 딸 마거릿과 결혼 했고, 메디치의 모든 아들이 후사가 없이 죽게 되자 프랑스의 왕이 되어 브르봉 왕가의 초대 왕이 되었다. 그는 본래 개신교도였으나 통치를 위해서 가톨릭으로 개종한 뒤에 낭트칙령을 통해서 프랑스 개신교도들에게 신앙의 자유를 주었다.(1598년 4월 13일) 앙리 4세는 그동안 종교전쟁으로 폐허가 된 프랑스를 회복시키는 많은 공적을 세운 탁월한 리더십을 발휘했다. 그러던 어느 날 당시 재무 장관이었던 Sully를 만나러 가는 길에 갑자기 마차에 뛰어 오른 광인의 비수에 의해서 암살당하고 만다.(1610년 5월 14일, 11 rue de la Ferronnerie 75001 Paris) </span></p> <p><span style="font-family: TSThgrgl; font-size: 12pt"><span style="font-weight: normal"><br /></span></span></p> <p><span style="font-family: TSThgrgl; font-size: 12pt"><span style="font-weight: normal"> 아이러니하게도 16세기 프랑스 종교개혁 시대의 박해자와 보호자가 모두 앙리였으며, 그들은 하나같이 비운의 주인공이 되어 인생을 마치고 말았다. 지금 앙리 4세가 암살당한 곳에는 이 사건을 알리는 작은 표식만 남아 있을 뿐이다.</span> </span></p> </div> </div> </div></h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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