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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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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5 style="text-align: justify" align="justify"> </h5> <div class="page" title="Page 2"> <div class="layoutArea"> <div class="column"> <p><span style='font-size: 12pt; font-family: "TSThgrgl"'> 마리 뒤랑은 19세의 꽃다운 나이에 에귀 모르트의 콩스탕스 탑에 갇혀서 38년을 보냈습니다. 그의 집에서 드려진 개신교 예배에 참여했다는 이유 때문이었지요. 그의 부모와 오라비도 체포되어 감옥에 갇혔다가 처형되었습니다. 한마디로 예배드리다가 온 가정이 풍비박산되었습니다. 파리 6구에서는 생 자크 거리의 충격이라고 불리게 된 개신교 예배가 드려졌습니다. 가톨릭 수호의 본부라고 할 수 있는 소르본 대학 옆에 있는 건물에서 말입니다. 이 일로 120명이 체포되었고 그중 일부는 처형되었습니다. 그라브롱 부인도 신부복을 차려입고 화형대에 올랐습니다. 죽음을 담보한 담대한 예배였지요. 들과 산에서는 광야 예배가 드려졌습니다. 이런 예배를 두고 어떤 이들은 “그건 무모한 짓이야~ 꼭 그렇게까지 예배를 드려야 하는가?”라고 냉소와 비난을 보낼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예배는 본래부터 희생과 위험을 감수하면서 드리는 행위이며 그렇게라도 포기하지 않고 드려야 하는 하나님 나라 백성의 가치인 게 분명합니다. 또한 위그노들이 이렇게 목숨을 건 예배를 드렸기에 복음 신앙을 지킬 수 있었고 그 덕에 지금 우리도 순전하고 위대한 복음을 누리고 있는 거지요. </span></p> <p><span style='font-size: 12pt; font-family: "TSThgrgl"'> 저의 할머니는 늦게 예수를 믿었습니다. 저의 아버지가 먼저 믿었고 이어서 고모들이 믿게 되었고 결국 할머니도 기독교인이 되었습니다. 우리 가정은 다른 건 몰라도 예배는 생명처럼 소중하게 생각했습니다. 할머니는 글을 읽을 줄도 모르는 일자무식이어서 성경 공부나 훈련을 받을 수는 없었지만, 예배만은 빠지지 않았고 주일 설교를 듣고 실천하는 것으로 충분히 좋은 그리스도인으로 사시다가 천국에 입성했습니다. 제가 청소년 시절에 방황했지만, 결국은 주님께 돌아와 목사의 길을 걷게 된 것은 예배자의 삶을 충실히 사셨던 할머니와 부모님이 모습이 큰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자녀에게 신앙을 유산으로 물려주는 가장 좋은 길은 부모가 자신의 내면에 있는 신앙을 주일 성수와 예배를 통해서 보여 주는 거라고 확신합니다. </span></p> <p><span style='font-size: 12pt; font-family: "TSThgrgl"'> 철저한 주일 성수와 위험을 담보한 희생적 예배가 흔들리고 있는 이 시대에 우리 예배의 현주소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span></p> </div> </div> </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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