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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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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5 style="text-align: justify" align="justify"> </h5> <div class="page" title="Page 1"> <div class="layoutArea"> <div class="column"> <p><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TSThgrgl"'>(벧전 4:13)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span></p> <p><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TSThgrgl"'><br /></span></p> <p><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TSThgrgl"'> 의인이 당하는 고난은 신학적 난제입니다. ‘하나님이 정의로우시다면 왜 의인이 고난을 겪어야 하는가?’ 욥기의 질문입니다. ‘그럴지라도 하나님은 옳으시다.’ 욥기의 결론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은 고난을 통해서 의인을 단련하셔서 순금으로 만들어 내시기 때문입니다. 이걸 신정론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을 겪을 때, ‘분명히 좋은 뜻이 있으실 거야’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span></p> <p><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TSThgrgl"'> 베드로는 여기에 더 놀라운 의미를 추가합니다. ‘성도의 고난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이다.’ 바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갈 6:17) 『이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노라.』 주님과 그의 나라를 위해서 살다가 겪는 고난은 주님의 고난에 참여하는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우리는 고난을 통해서 주님과 같은 배를 탑니다. 그리스도와 내가 운명 공동체가 되는 거지요. 그래서 성도가 당하는 고난은 슬픈 게 아니라 기쁘고 즐거운 겁니다. </span></p> <p><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TSThgrgl"'> 초대교회 성도들은 이 고난을 자처했습니다. 순교마저도 피하지 않았지요. 주후 313년 콘스탄티누스가 기독교를 공인한 후에 점차 박해가 사라지자 어떤 이들은 이집트 광야로 나가서 빈한하고 고달픈 삶을 자처하며 기도 생활을 이어갔습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고 싶어서였지요. 그게 수도원의 기원입니다. </span></p> <p><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TSThgrgl"'> 이탈리아 아시시 성 프란체스코 성당에는 조토가 그린 ‘성스러운 흔적을 받은 성 프란체스코’ 프레스코화가 있습니다. 프란체스코 생애의 하이라이트를 그린 겁니다. 그는 금수저였지만, 예수님을 만난 후에 소중한 것을 버리고 흙수저의 삶을 자처하며 가난한 이들의 벗이 되었습니다. 그로 인해서 탁발수도회가 만들어지고 그 수도회는 죽어가는 중세 교회에 생명을 불어넣었습니다. 그는 그렇게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했습니다. 고난 이후의 영광을 알았기 때문이겠지요. 그가 죽기 2년 전에 그의 손과 발 그리고 옆구리에 예수 그리스도의 상처가 나타났다고 합니다. 그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온전히 참여했다는 증거였습니다. </span></p> </div> </div> </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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