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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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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5 align="justify" style="text-align: justify"><font size="3"><span style="font-weight: normal"> 위그노 디아스포라가 탄생한 절대적인 동기는 그들의 경제적이며 게인적인 이유나 신대륙 탐험에 대한 욕구보다는 프랑스 당국과 가톨릭 세력에 의한 강력한 탄압이었다. 프랑스 개신교도들은 생존과 신앙의 자유를 위해서 자발적 또는 비자발적으로 해외 도피를 해야만 했다. 16-18세기에 위그노에 대한 크고 작은 박해는 계속되었다. 그 중에서 가장 큰 박해는 1572년 의 ‘성 바톨로매 축일 대학살’ 사건과 1685년의 선포된 ‘풍텐블로 칙령’으로 발생했다.’</span><br /><span style="font-weight: normal"> 첫째, 성 바톨로매 축일 대학살이다. 이는 성 바톨로매 축일인 1572년 8 월 24일에 프랑스 파리에서 시작되어 전국으로 확산된 대규모 종교적 학살 사건이다. 이 비극적인 사건은 성장하고 있던 프랑스 개신교회에 커다란 타 격을 주었다. 살아남은 자들에 대한 가톨릭으로의 복귀가 도처에서 강요되었다. 파리에서는 5000명이 가톨릭으로 개종했다. 학살이 일어나지 않은 지역들조차 상당수의 목회자들이 제네바, 로잔, 바젤, 라인강변, 영국, 네덜 란드 등으로 망명했다. 수많은 저명한 평신도를 역시 그들의 목회자를 따라서 프랑스를 떠나 이국 땅에 디아스포라가 되어 영구히 정착했다. </span><br /><span style="font-weight: normal"> 제1차 위그노 난민의 이주 물결은 16세기부터 시작되었다. 1560년부터 시작된 첫 박해와 1572년에 자행된 성 바톨로매 축일 대학살은 그들의 망명을 더욱 촉발했고, 그 이후 수많은 위그노들이 프랑스를 떠났다.</span><br /><span style="font-weight: normal"> 당시 북부 7개 주의 연합인 프로방스 유니(Provinces-Unies, 오늘날의 네덜란드 지역)에서는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플랑드르 출신의 난민들이 그 지역 최초의 개신교회인 왈론 교회(les Premières Eglises Wallonnes)를 세웠다. 프랑스 출신 난민들도 이들과 합류해서 프랑스어 개신교 공동체를 형성했다. 이런 상황에 대해서 장 칼뱅과 테오도르 드 베즈는 다음과 같이 말하며 이들의 이주를 신앙의 미덕으로 권장하고 정당화해 주었다.</span></font></h5> <h5 align="justify" style="text-align: justify"><font size="3"><br /></font><font size="3"><span style="font-weight: normal"><i>자신의 신앙을 증언할 힘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망명해야 한다.</i> - 장 칼뱅 -</span></font><br /><font size="3"><span style="font-weight: normal"><i>하늘은 어디서나 가까우며, 인간에게는 영원한 거처가 없다.</i> </span><span style="font-weight: normal">- 테오도르 드 베즈 -</span></font></h5> <h5 align="justify" style="text-align: justify"><font size="3"><br /><span style="font-weight: normal"> - 「미셔널 위그노」 -</span></font></h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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