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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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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5 align="justify" style="text-align: justify"><font size="3"><span style="font-weight: normal"> 둘째, 퐁텐블로 칙령으로 인한 낭트 칙령의 폐지다. 낭트 칙령(L’Edit de Nantes, 1598)은 앙리 4세 (Henri IV)가 종교 전쟁을 종식하고 프랑스 내 위그노들에게 제한적이지만 중요한 종교적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제정한 법령이었다. 하지만 87년의 짧은 자유는 루이 14세(Louis XIV)의 퐁텐블로 직령(L’Edit de Fontainebleau, 1685)으로 막을 내렸다. 이 칙령에 의해서 위그노들의 공적, 사적 예배가 전면 금지되었고 예배당과 학교는 폐쇄되고 파괴되었다. 왕실 군인들인 용기병(Dragonnades)은 위그노 가정에 주둔하며 가혹하게 개종을 요구했고 개종을 거부한 위그노의 재산을 압수하고 각종 폭력과 고문으로 위협했다. 그 결과 1백 만 명 정도가 가톨릭으로 돌아갔다. 국왕은 위그노들이 프랑스를 떠나지 못하도록 명령했다. 하지만 수많은 위그노들의 탈출은 비밀리에 이루어졌다. 그 결과 수십 만 명의 위그노들이 프랑스를 떠나 네덜란드, 독일, 스위스, 잉글랜드, 아메리카 대륙 등지로 망명했다.</span><br /><span style="font-weight: normal"> 1685년에 프랑스 인구는 1800-2000만 명 정도였으며 위그노의 수는 125만 명 정도로 전체 인구의 약 7%에 해당한다. 퐁텐블로 칙령을 전후로 1685-1700년 사이에 위그노 20만 명 정도가 프랑스를 떠나 망명했다. 이는 프랑스 개신교도의 대략 16% 이상이 프랑스를 떠난 것이다. 이들은 프랑스 총 인구의 1%에 해당된다. 이렇게 해서 프랑스는 매우 가치 있는 사람들을 잃게 되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주로 젊은이들이었고 특별한 도덕성과 특별한 기술을 가진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span><br /><span style="font-weight: normal"> 주변의 개신교 나라들, 즉 아메리카 대륙을 식민지로 둔 영국, 남아공의 케이프타운을 식민지로 가진 프로방스 연방, 브란덴부르크를 포함한 많은 독일 지방은 위그노 난민의 망명을 적극적으로 환영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위그노 이민자들이 그들에게 제공할 이익과 그들의 가치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위그노 기술자들은 당시 프랑스가 가진 최고의 기술과 그것을 사용하는 방법을 가져오고, 위그노 장교들은 프랑스 군대의 전술과 전략을 가져올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들의 망명은 프랑스 역사는 물론 유럽과 더 나아가 세계 역사를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span><br /><span style="font-weight: normal"> - 「미셔널 위그노」 -</span></font></h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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